민세 기념사업회 회장인사말


prepict[1].jpg 현장을 끝까지 지킨 열린 민족주의자 - 民世 安在鴻


金 鎭 炫 회장
(전 과기처 장관, 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민세 안재홍 선생은 20세기 한국 민족의 고난의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일관되게 열린 민족주의 국제적 민족주의 좌우통합을 추진했던 참 독립운동가이며 참정치인이었다.

민세 안재홍 선생의 독립운동은 비분감개나 ‘반사적 급진’(反射的 急進)운동이나 관념적 공산주의운동을 거부하고 조선사 조선어 연구를 통한 조선의 정체성, 민족문화 선양과 실천적 교육을 통한 민력 양성운동을 추진한 당대 대학자요 대 언론이요, 대 계몽가이셨다. 민세연보와 선집 편찬에 힘쓴 고 천관우 선생의 평을 빌리면 ‘고절의 국사’이셨다. 민족의 참 선비이셨다.

일제강점기 국내 많은 지도자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친일의 길, 침묵의 길, 기회주의적 처신의 길을 걸었지만 해외에서 보다도 더 혹독한 일제하 이 땅의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비타협, 비폭력, 실천적 저항의 지조를 지키고 행동한 독립운동의 표상이셨다. 23년간 9번 투옥되는 국내 항일운동가 중 보기 드문 고난의 기록을 만드셨다.

“입옥(入獄)할때마다 공정(空靜)한 독거방 생애에서” 고대사 연구를, 우리말 사전의 편찬을, 신문의 사설을 쓴 고난과 고절이 바로 민세의 역정이었다. 민세는 980편의 사설과 글을 남긴 대 언론인이었고 후배들은 그를 ‘속필의 대기자’, ‘문웅’으로 존경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전국단위의 좌우합작 독립운동이었던 신간회(1927-31)창립과 활동의 중심이었다. 이상재, 홍명회와 더불어 국내 민족운동의 신기축을 이루었던 신간회는 일제탄압과 공산주의 세력의 분파운동으로 4년 만에 막을 내리나 신간회를 통하여 실천코자 했던 신민족주의, 열린 민족주의는 오늘에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해방전후 국면에서의 ‘순정우익’노선과 눈물어린 민족진영 통합 노력, 미군정기간의 민정장관역임, 단정반대와 2대국회의원 당선 그리고 6.25 납북과 북한에서의 무거운 침묵, 1965년 3월 1일 북녘 땅에서의 외로운 죽음.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1945년 광복 이후 그의 고난과 45년 이전 일제하 그의 고난을 어찌 교량할 수 있는 것인가. 숙연하고 처연할 뿐이다.

그러나 그가 평생 가꾸던 ‘신생조선’(新生朝鮮)의 꿈을 이제 다시 결연히 일으켜 세워야겠다. 민세는 오늘의 우리에게 두 개 명제를 주고 있다. 하나는 열린 민족주의의 21세기 전개이다. 그는 당대에서는 세계일가(世界一家), 세계적 대동(世界的 大同), 코스모폴리탄이즘(Cosmopolitanism), 인류문화의 시대진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폭넓은 지성인이었으며 그래서 더욱 식민지 아래서 민족문화의 순화, 선양, 정화에 노력했다. 오늘날 세계화시대에서 WTO, 시장개혁, 행정, 교육개혁의 개방화 요구와 남북문제와 주변국 외교를 둘러싼 감정적 배타적 국수주의 폭주를 어떻게 정리하고 민족의 자유를 이끌 것인지. 민세선생님의 지혜가 아쉽다.

둘째 그는 1930년대 한국지식인들의 갖가지 곡절과 수난을 회피하는 ‘보신주의 처신’을 지적하고 조선민중을 수난에서 구하고저 행동하는 ‘존귀한 지도자가 부재(不在)’함을 한탄했다. 줏대 있고 책임 있는 지성인과 정치 리더쉽의 빈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민족의 큰 명제이다.

민세는 그의 뛰어난 역사의식에서 우러나온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이고 있다. “신민족주의” “다사리즘”으로 정립된 그의 대중공생 사상은 21세기 한국의 민족주의가 나가야하는 방향을 설정하는데 아직도 유효한 면이 있다. 진백(자유)와 진생(평등)의 조화 속에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 사회의 경쟁력이 성장되려면 “다 사리어(말해서) 다 살게 하자”며 그가 내세운 건국비전이 이 시대 남북의 “화해와 공존”의 숙제를 해결하는데도 커다란 정신적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사후 24년이 지났지만 늦게나마 1989년 애석하게도 6.25전쟁으로 북한에 납북되신 선생님께 정부가 건국훈장 대통령 장을 수여하여 유족의 오랜 한을 풀고 선생에 대한 올바른 평가의 단초를 제공하고 최근 묘소의 공개로 평양 삼석특설 묘지에 묻힌 민세의 묘비명에는 “‘애국지사”라는 글귀가 병기되어 있어 남북한 모두가 그의 치열한 항일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도 그의 일관성이 반영된 한 단면일 것이다.

광복이후 지난 60년간 우리는 숨가쁜 격동과 파란의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며 이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그리고 분단과 이념 대립, 전쟁과 혼란, 권위주의와 민주적 정부 수립에 이르는 소중한 역사의 경험을 돌이켜보면서, 우리는 “일관성”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오늘 한국 민족주의의 지평을 넓히며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국가 수립에 헌신 민세 안재홍 선생을 현창하는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취임함에 민세의 빛이 21세기에 살아나길 간절히 기원한다. 민세 선생과 함께 신간회 운동과 해방 후 건국사업에 참여한 선친으로부터 어려부터 민세선생의 덕망을 듣고 자랐다. 그리고 제가 언론인의 길을 걸으며 늘 머릿속으로 고민해온 개방적인 한국의 민족주의의 방향에 단초를 제공하신 분으로 평소 존경해왔던 바라 더 그렇다. 부족하지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향후 “21세기의 민세정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도 생각해 보고저 한다.

지난 5년간 사업회의 초석을 놓으며 각종 활동을 펼친 전임 김선기 회장을 비롯한 젊고 의욕적인 운영이사들의 노고와 이 자리에 와서 기념사업회의 발전을 함께 축하해 주고 있는 내외 귀빈, 지우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인생을 일하고, 인생을 읽으라.”는 민세의 좌우명을 되새기며, 앞으로 아호 民世처럼 민족에서 세계로의 조화와 중용의 정신이 우리 지성 사회에 전파될 수 있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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